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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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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선화] 팬데믹과 '새로운 자본주의'의 등장

작성일 : 2021-10-06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팬데믹과 '새로운 자본주의'의 등장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전세계 코로나 현황을 보여주는 계기판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 우리는 매일매일 전대미문의 이벤트를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선진국으로 선망하던 미국과 유럽 여러 국가의 시스템 붕괴는 무엇보다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와 함께 보건위기와 지역봉쇄라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 할 것 없이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 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신기술은 비대면 서비스와 가상공간에 대한 수요 폭증과 맞물려 범용화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시켰다. 지난 2년간 나의 시계는 멈추었는데, 나를 제외한 세상은 팬데믹 이전보다 더 빨리 더 어지럽게 움직인다. 미시적 개체에 불과한 우리가 거시적 세계의 변화를 내다 볼 재간은 없다. 다만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다시 한번 역사에 기대어 보자.


공교롭게도 21세기의 20년대는 20세기의 20년대와 무척이나 닮은 꼴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이후 억눌려 있던 욕구가 분출하면서 꽃피운 미국 자본주의는 이른바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를 맞이한다. 전기와 통신, 석유화학과 내연기관 등 분야에서 19세기 후반 이후 진행된 기술 혁신에 소비와 욕망이라는 기름이 부어지자, 공장에서 대기하던 기술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용광로를 통해 범용기술로 확산되었다. 이른바 2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1920년대의 첫 번째 종착역은 세계 대공황이었다. 시장과 기술이 만나 자본주의는 만개하는 듯 보였으나 이를 움직이는 질서는 여전히 19세기 자유방임이라는 고전적 세계관에 머물러 있었다. 미시적 경제주체들이 최선을 다해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균형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사회를 지탱하던 물적 기반이 무너지면서 정치사회적으로는 파시즘, 국제관계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두 번째 파국이 이어졌다.


대혼란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경제학 분야에서는 미시적 주체의 산술적 합계가 거시적 현상과 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의 결과로 거시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정립되었다. 케인스주의 거시경제학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이 지나간 폐허 위에 수정자본주의와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만들기 위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경제질서를 관리하고 정부의 기능을 재정의한 케인스주의는 1970년대 고전학파의 철학을 일부 계승한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으로 선회하였으나 큰 틀에서는 여전히 현대 자본주의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지구적 차원의 팬데믹으로 시작한 21세기의 20년대는 마치 100년 전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로버트 고든은 187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자본주의의 기술사와 경제성장을 세밀하게 분석한 역작,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에서 제2차 산업혁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가져올 미래 혁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고든이 분석한 2010년대 중반까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던 기술 확산의 속도는 역설적이게도 코로나가 진행되는 와중에 가속화하였으며, 그 결과 내연기관과 석유화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생산양식과 소비양식을 아우르는 우리의 경제생활 전반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네크워크를 장악한 독점기업의 출현, 가계 부채에 기댄 자산시장의 폭등, 불평등 심화에 따른 사회적 불안의 고조 등 최근의 경제적 전개 양상은 현대 자본주의 태동기를 무척이나 닮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역사는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변이된 형태로 되풀이된다. 차이점이라면 20세기 팬데믹의 끝이 대공황이었다면 21세기에는 이와 반대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지 10여년 후에 팬데믹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자본주의의 내생적 전개와 역병과 같은 역사적 이벤트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정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이 두 가지 이벤트의 순서가 바뀐 것은 위기의 대응방식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도한 금융화와 자유화의 부산물인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발은 1970년대 이후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규정해 온 신자유주의적 정책 패러다임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대공황이 그러했듯, 현존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과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시장의 우위에 기반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불균형과 불평등, 장기침체와 같이 세계 경제가 처해 있는 누적된 문제에 대해 무력한 상태였다.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의 '새로운 자본주의' 논쟁은 시장 우위의 경제정책을 유지하면서 부작용을 보완하자는 쪽과 경제의 공정성과 역동성 회복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재강화하자는 쪽으로 나누어 전개되었다. 특히 후자의 입장은 로렌스 서머스가 2013년 국제통화기금 컨퍼런스에서 앨빈 한센의 장기정체론(secular stagnation)을 들고 나오면서 이론적 및 정책적 입지를 강화하게 되었다. 서머스의 장기정체론은 200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 정체가 일시적 경기변동이 아닌 총수요의 구조적 부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공급측 이론에 기반한 보수적 경제이론과 결별한 것으로 평가된다.


팬데믹 국면에서 주요 선진국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창하는 정책적 솔루션에 손을 들어주었다. 패러다임 전환을 견인하는 대표적 학파인 새케인즈주의의 경우, 외생적 기술변화가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주요 결정요인임을 인정하지만 총수요 충격 역시 경제주체의 혁신역량이나 장기실업에 대한 이력효과(履歷效果, hysteresis)를 통해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밖에 포스트케인지언 등 진보적 입장의 경제이론은 수요가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대해 조금씩 입장을 달리하지만 정부가 총수요 관리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불균형과 불안정성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생각을 공유한다.


이와 같이 코로나 팬데믹의 경우 각국 정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재난구호 정책에 힘입어 보건위기가 경제시스템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긴급상황에 대한 응급조치 과정에서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었고 자산시장 폭등에 따른 불평등 또한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국민경제 차원의 조절능력과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공조체제를 강화해 나가지 않는다면 고전적 자본주의가 경험한 100년 전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지난 10년간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는 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업그레이드된 자본주의를 향한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합의가 아닐까 한다. 현재의 상황에 비견되는 스페인 독감 이후 광란의 20년대는 비극의 끝이 아닌 전초전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現 자치분권위원회 재정분권 전문위원
現 지방재정위기관리위원회 위원
前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前 동반성장위원회 공익위원
前 에너지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