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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이채정]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

작성일 : 2022-01-26 작성자 : 통합 관리자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




미국의 경영사학자 챈들러(Alfred D. Chandler)는 조직이 추구하는 전략에 따라 조직의 구조가 배열되는 경향을 토대로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structure follows strategy)”고 하였다. 그렇다면, 역으로 조직의 구조는 조직이 추구하는 전략을 읽을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야당 대선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논란이 되었다. 젠더갈등을 부추겨 20대 남성을 공략하기 위한 소위 갈라치기 전술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둘러싼 정치적 셈법에 대한 논의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대신 이 논란을 기회 삼아 우리나라 사회부처의 조직 구조는 어떠한지 살펴보고, 과연 그 구조로부터 어떤 전략을 읽어낼 수 있을지 모두가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정부조직법」 제19조는 부총리에 대하여 정하고 있다. 2인의 부총리는 각각 기획재정부장관과 교육부장관이 겸임하고, 교육부장관은 교육·사회 및 문화 정책에 관하여 국무총리의 명을 받아 관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조정하도록 역할이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사회부총리를 겸임하는 교육부장관은 대통령령인 「교육·사회 및 문화 관계장관회의 규정」에 따라 사회관계장관회의의 의장을 맡게 되고,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보건복지부・환경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방송통신위원회・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 등 총 13명이 월 2회 회의를 개최한다.


교육·사회 및 문화 정책 관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조정하는 역할이 교육부장관에게 맡겨지는 것은 이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의 교육부총리제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부총리가 없었던 이명박 정부 이후 2014년 5월 박근혜 정부에서 단행된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사회부총리 직제가 신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을 통하여 나라를 튼튼하게 세운다는 교육입국(敎育立國)의 전통이 강하다. 그러니 교육부장관이 사회관계장관회의의 의장을 맡는 것은 당연한가?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2001년 이래 현재까지 교육이 사회 분야의 최우선 정책과제인 국가라고 볼 수 있는가?



한편, 사회관계장관회의에 포함되는 부처를 살펴보면 일부 정책의제는 공유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심각한 실업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국정과제인 경우를 상상해보자.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되어 대책을 논의해야 하고, 총예산과 일선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의 각종 급여 및 서비스 전달체계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책추진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며, 사회관계장관회의 또한 이들 부처를 중심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교육부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하는 현재와 같은 조직 구조가 적합하다고 볼 수 있는가?


특정 부처의 폐지나 부총리 겸임 부처의 변경과 같은 세부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논의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부처는 어떤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가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어떠한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이와 같은 조직 구조를 구성하였는가에 대하여 파악하기 어렵다. 교육입국의 대한민국인가, 전례(前例)를 충실히 따르는 정부조직 구조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시때때로 정권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책과제 추진을 위해서는 개별적인 위원회를 설치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대통령·국무총리 직속 위원회는 2016년 79곳, 2017년 77곳, 2018년 75곳, 2019년 78곳, 2020년 84곳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위원회에 투입되는 예산도 2016년 474억 원에서 2020년 891억 원으로 증가했다. 투입 예산이 늘어났지만, 이들 위원회의 연평균 회의 개최 실적은 2016년 12건, 2017년 10건, 2018년 10건, 2019년 14건, 2020년 13건으로 집계되었고, 국가인적자원위원회와 문화다양성위원회는 2020년 9월 기준 5년간 한 차례도 회의를 개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2020.09.21. 조선일보 “대통령·국무총리 직속위 77곳, 일 년 내내 회의 한번 안 했다” 보도 인용).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무수한 국정과제가 쏟아진다. 그리고 무엇을 우선으로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열심히 홍보한다. 그러나 그 무수한 국정과제가, 정권이 지정한 선결과제가 우리 사회 구성원 전반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긴 시간을 들여 합리적인 분석과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전략에 근거하기보다는 선거 승리 후, 짧은 시간 안에 각계의 일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정부조직 개편은 난맥상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체계적인 전략에 근거하여 구조를 다지기보다는 기존의 틀에서 일부 부처를 합치거나 쪼개거나 없애거나 하는 방식으로 변주할 뿐이다.



대선까지 한 달 남짓이 남았다. 국민 대다수는 내가 어떤 나라에 살게 될지, 살만한 나라일지, 내가 선택한 정부가 살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계획을 세워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가 궁금하다. 이제는 어떤 전략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어 갈지, 그리고 그러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어떤 조직을 구성할지, 구체적인 미래를 말할 시간이다. 앞으로 한 달 남짓이 온 나라가 미래를 그리는 희망의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