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기고   >   미래생각

미래생각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미래연구원 연구진의 기고문입니다
(본 기고문은 국회미래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박현석] 영혼없는 공무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작성일 : 2023-06-07 작성자 : 통합 관리자

탄소중립 추진을 위해 지금 필요한 일 글.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2023.1.31



영혼없는 공무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문재인 정부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실무를 담당했던 공무원들은 “원전 경제성 축소 및 감사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시각에서 보면 이들은 영혼을 팔아먹고 권력에 영합한 죄인이다.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은 감사원과 검찰이 유권자들로부터 위임받은 정당한 정책수행에 대해 정치적으로 개입했다고 평가한다. 혹자는 관료는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인데 억울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하지만, 다른 이들은 부당한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따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대체 어떤 의견이 맞는 것일까?

한국의 관료들은 고도 경제성장을 주도해 온 주역들이다. 고시 합격증은 국가 공인 인재보증서와 다름없다. 사회는 관료들의 탁월성을 인정하였고, 관료들도 격무에도 불구하고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국정 업무를 수행해 왔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원인 중 하나로 능력있는 관료들이 이익집단의 영향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지고 효율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 왔다는 점을 꼽고 있다.

세계적으로 탁월성과 효율성을 인정받는 고도 경제성장 시기 한국, 일본, 싱가포르의 관료제는 보수정당의 장기집권이라는 공통적인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능력에 따라 우수한 젊은 인재들을 관료로 선발하여 신분을 보장하며 정책 전문가로 육성했고, 성공적인 관료들은 퇴직 이후 정계로 진출하거나 민간 혹은 공공 영역의 유관 분야로 진출해 활약하였다. 과거 집권당이 바뀌지 않던 시기에는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국가적인 공감대 속에서 장기적인 국가전략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고, 관료 조직은 장기 집권하는 여당과 유대감을 유지하면서 장기적 국가전략이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였다.

보수정당의 집권이 지속된 일본이나 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주기적으로 집권당이 바뀌며 정당 간의 정권교체가 계속되었다. 집권당의 주기적 교체는 직업 관료제와 충돌을 일으켰다. 대선 후보들은 나름의 국가전략을 제시하며 전임 대통령과 차별성을 가지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특히 보수에서 진보로, 혹은 진보에서 보수로 대통령이 바뀌게 되면 국정의 기조 또한 큰 변화를 겪는다. 시험에 합격해서 공무원이 된 관료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임명한 장관의 정책수립 및 집행을 보좌해야 한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이를 실현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산업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탈원전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는 탈원전 정책을 되돌리는 역할을 해야 했다. 자신들이 하던 일을 반대로 뒤집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요직에 근무했던 관료들은 정권이 바뀌게 되면 한직으로 물러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심한 경우 감사 혹은 수사를 받게 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관료 개인의 입장에서는 영혼을 버리고 위에서 시키는 일만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행하거나 가급적이면 복지부동하며 정권이 바뀌면 문제가 될만한 일은 피하게 된다.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여 정년까지 신분을 보장해 주었는데 관료들이 열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지 못한다면 국가적으로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사회가 다원화되는 만큼 다양한 국가전략이 경쟁하며 선거를 통해 새로운 미래비전이 선택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민주화 시대에 걸맞는 유연하고 열린 인재 활용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크게 보아 두 가지 방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방안은 관료들의 전문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관료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정부는 대통령실이 실무자급의 인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멈추고 관료 조직의 자율성을 보다 폭넓게 인정해 주어야 한다. 대통령은 장관과 차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되, 고위급 실무자에 대한 실질적인 인사권을 부처로 넘겨준다면 유능한 공무원이 이전 정부에서 요직에 근무했다고 해서 좌천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고위 관료들이 보다 소신껏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안은 엽관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시험을 통한 고급공무원 선발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위공무원단의 경우 미국식의 엽관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고위직으로 갈수록 대통령과 공직생활을 함께하는 정무직 공무원의 비중이 높다. 중립적인 규제업무를 담당하는 경우 대통령 임기와 무관하게 근무하지만, 정책을 수행하는 다수의 고위 공직자들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통령과 함께 퇴직한다. 미국식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정책 전문가들이 정권이 바뀌면 민간에서 새로운 일터를 찾아서 정책역량을 향상시키고, 향후 다시 공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유연한 직업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 그동안 이른바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해 다양한 규제가 도입되었다. 두 번째 방안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방식으로 우수한 인재를 활용하기 위해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인적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정훈

박현석

국회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


위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에 해당하며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작권 정책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